뒤틀림 탐정

35화 - 영역

어느새 이날 했던 생각이 몇 없는 내 소망이 되었다.


방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했다. 생활감이 느껴지는 방에서 아침을 맞이하니 이곳에 베인 피 냄새만 아니었다면 예전의 일상과 같았을 것이다. 에즈라는 내 옆에서 열심히 코를 골며 아직도 자고 있다. 반면 베스파는 한숨이라도 잔 것인지 모르게 검을 안고 바닥에 앉아 문을 응시하고 있다.

“잠은 잤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휴식은 취했습니다.”

“다행이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카포 아래의 솔다토 계급일 것이다.

“말하도록.”

“엄지 솔다토 라미입니다. 일어나셨는지 확인하고자 왔습니다.”

나는 베스파에게 고개를 돌렸다. 5급 해결사인 내가 카포인 이자벨을 언급하면 안 된다.

“카포 이자벨이 만나자고 한 건가?”

베스파가 나 대신 말했다.

“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곧 가도록 하지.”

베스파가 있어서 다행이군. 엄지와 협상하기 수월할 것이다. 나는 에즈라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음냐… 탐정님… 한 그릇만 더요…”

바보 같은 잠꼬대를 하는군.


거실로 나오니 동그란 4인용 식탁 위에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엄지의 카포 이자벨이 앉아있다.

“여기 앉으시죠. 베스파와 그 일행분들.”

이자벨은 나와 에즈라는 신경 쓰지 않고 베스파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자리에 앉았다.

“1급 해결사인 베스파씨와 세븐 협회 소속 해결사들이라. 이곳에 계신 이유가 무엇이죠? 역시 L사 둥지에서 세력 싸움을 하고자 온 것일까요.”

베스파는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베이컨을 포크로 집었다. 그리고 이자벨을 바라보았다.

“나는 여기 옆에 있는 모제스씨 밑에서 일하고 있다. 내 직위와 권한을 전부 옆에 있는 모제스씨에게 이관하도록 하지.”

성가신 티를 적나라하게 내는군.

“…좋습니다. 그나저나 엄지 내부에서 사용하는 권위의 이관까지 알고 있다니, 1급 해결사는 다르군요. ”

이자벨은 대답을 하며 시가를 물고 불을 붙였다.

“아니면 혹시 엄지 관계자인가?”

시가 연기를 베스파에게 내뿜으며 이자벨은 눈을 가늘게 떴다. 베스파는 미동도 않고 이자벨을 노려봤다.

“다른 이야기로 새지 맙시다. 동등한 위치로써 이야기하고 싶군요. 에즈라. 식탁 좀 치워주렴. 모두 식사할 여유는 없는 것 같구나.”

“읍… 네!”

에즈라가 베이컨을 허겁지겁 넣으며 대답했다.


에즈라와 엄지 조직원들이 식탁을 치웠고, 나는 곰방대를 물었다. 이제 협상과 거래의 시간이다. 상대는 손가락 중 하나인 엄지. 어떤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나와도 놀라지 않을 대상이다.

“세븐 협회 소속 5급 해결사 모제스씨.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러죠.”

엄지는 손가락 중에서 가장 조직력이 뛰어나다. 무수한 산하 조직을 거느리고 있고, 이런 시답지 않은 일에 엄지 조직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솔다토에 카포까지 왔다는 것은 산하조직들을 쓸 수 없다는 뜻일 거다. 아마 이 둥지의 안개와 관련 있겠지. 인지를 흐리는 이 안개 속에서 조직력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를 사용하려는 거겠지.

“거래를 제안합니다. 각오는 하고 있으셨겠죠.”

그렇다. 엄지가 제안하는 거래는 거부하기 힘들다. 동등한 위치에서는 명분이 충분하다면 예의를 지켜 거절할 수 있겠지만, 우리를 청소부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보호해 줬다. 빚을 졌다. 이 빚을 넘을 명분은 마땅히 없을 것이다.

“거래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나는 곰방대를 물고 숨을 내쉬었다.

“모제스씨. 우선 당신과 동료들에 대한 소개를 들어야겠군요. 제안의 내용이 변하진 않겠지만 참작은 가능할 테니까요.”

이자벨이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랐다.

“저는 뒤틀림 탐정이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둘은 그 일을 도와주는 조수죠.”

이자벨의 미간이 씰룩거렸다. 뒤틀림이라는 말에 반응한 것인가. 분명 그럴 것이다. L사 둥지 안에서는 뒤틀림이 자주 보인다고 한다. 뒤틀림에 관련한 일을 한다는 걸 숨길 이유가 없다. 되려 이 자들이 우리에게 이곳에서 벌어진 뒤틀림에 대한 정보를 줄 것이다. 하지만 이 예측이 빗나간다면 그저 세력 다툼에 쓰이는 말에 불과할 것이다.

“탐정이라… 3급 해결사와 1급 해결사를 조수로 부리다니 대단하군요. 밖과 연락이라도 되면 본부에 연락해서 당장 사실관계를 파악해 볼 텐데…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네요.”

이자벨은 앞에 놓인 술잔을 목에 털어 넣었다. 예상과는 달리 뒤틀림이라는 말에 반응하지 않는군.

“…깊게 물어보지는 않도록 하죠. 앞으로 이곳, L사 둥지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할 겁니다. 우리 엄지와 산하조직들은 이 싸움을 준비하고 있죠.”

“우리 뒤틀림 탐정 사무소도 그 싸움에 참여하라는 것이 거래 내용일까요.”

“전면전을 펼칠 전력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 둥지에서 엄지의 머스킷 탄환을 공급하기로 한 공방들이 잠적을 감췄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에즈라가 눈을 반짝였다. 공방 이야기가 나오니 그럴 만하다. 그것도 엄지에게 납품하는 공방이라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촉하기도 어려운 곳이다.

“그 행방을 찾아달라는 거군요.”

나는 곰방대를 물었다. 이자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엄지의 거래라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원하죠?”

정보가 필요하다. 뒤틀림에 대한 정보. 엄지라면 확실한 정보망이 되어줄 것이다.

“이 둥지에서 발생하는 뒤틀림 현상에 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상시로 그 정보를 받고 싶다는 뜻인가요.”

이자벨은 나와 베스파 그리고 에즈라를 눈으로 훑었다.

“안타깝지만 우리도 고립된 상태입니다. 이 안개 속에서는 통신이나 위치를 특정하는 게 쉽지 않죠.”

“그 말은 줄 수 있는 정보가 없다는 말이군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본부와 연락할 수 있다면 다른 카포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죠. 그때 취합한 정보들을 넘겨드리면 어떨까요.”

나는 연기를 내뿜었다. 다행히 베스파가 있어서 이야기가 쉽게 풀렸다. 그리고 우리를 구해준 대가에 대해서 무리하게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자벨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했다.

“…분실한 탄환 사건과 공방 위치 등에 대한 정보를 좀 더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이자벨과 악수를 했다.


거리는 밤보다는 밝지만 여전히 안개 때문에 어둡고 시야가 흐리다. 우리는 이자벨이 알려준 공방의 대략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에즈라는 엄지의 공방으로 향하는 탓인지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베스파는 인상을 쓰며 뒤따라오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역시 저 아이는 엄지와 깊은 악연이 있어 보이는군.

“에즈라. 엄지가 이용하는 공방에 대해서 좀 아는 게 있니?”

“네! 그럼요!”

에즈라가 더 물어봐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나는 엄지에 대해서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만 알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엄지와는 유독 마찰이 없었군.

“그래서 에즈라, 네가 아는 정보는?”

“탐정님도 아시다시피 엄지는 머스킷을 쓰죠!”

“그렇지.”

“그리고 엄지가 사용하는 탄환은 엄청 다양해요. 상황에 맞게 탄환을 돌려가며 쓰죠.”

“그 탄환은 굉장히 비쌀 테고.”

“장난 아니죠! 한 번 숙청이라도 일어나면 돈을 막 뿌리는 수준이라니까요.”

숙청이라는 말을 듣자 베스파의 미간이 구겨졌다. 엄지의 숙청과 관련한 과거가 있군.

“하지만 시원치 않은 일에 탄환을 막 쓰는 건 아니에요. 사실 엄지의 총은 탄환이 없어도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하거든요. 개머리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타격무기보다 성능이 좋아요. 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나무로 만들기 때문이죠!”

에즈라가 지치지도 않고 신나게 말한다.

“생긴 건 단순해 보여도 여러 공방의 기술이 들어갔어요. 가속이나 질량 조절 기술은 말할 것도 없구요! 괜히 아무나 숙청할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누구의 턱이라도 으깨기 좋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즐겁습니까?”

베스파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엄지에 관한 이야기가 이 아이를 자극했다.

“응? 당연히 공방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지!”

”그 개머리판에 직접 맞아 봤습니까…”

베스파가 살의에 찬 눈으로 에즈라를 바라봤다. 내 삶에서 숱하게 봐온 눈이다. 에즈라의 표정이 일순 변했다. 전쟁 때 에즈라의 표정.

“그 눈 뭐야.”

“에즈라씨. 제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삼가시죠. 혀를 베어내기 전에.”

베스파가 허리춤에 있는 칼 손잡이를 잡았다.

“탐정님 앞에서 그런 눈 하지 마.”

에즈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미간을 짚었다. 시한폭탄 같은 아이들이다.

“탐정님과 나는 전쟁을 겪었어. 네가 겪은 어떤 일보다 우리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어.”

노란 섬광이 일렁였다.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알지?”

베스파가 어느새 칼을 뽑았다.

“그딴 건 상관없어. 그런 눈으로 탐정님에게… 우리에게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 마.”

에즈라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전쟁을 겪고서도 사람 죽이는 일을 즐겁게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곰방대를 물었다.

“내가 아는 방법은 이것뿐이야. 재미를 찾는 것. 진지하지 않을 것.”

에즈라의 노란머리가 점차 하얗게 변해간다.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베스파의 목을 움켜쥐었다. 지지 않고 베스파도 에즈라의 목을 잡았다. 둘 다 살인 병기 그 자체군.

“…에즈라. 그만.

에즈라는 바로 팔을 내렸다. 차가운 눈은 그대로다.

“미안하구나. 내가 무신경했어.”

나는 연기를 내뿜었다. 베스파도 에즈라의 목에서 손을 뗐다.

“베스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예전 일을 극복하는 중이야. 그리고 너도 그렇겠지. 좋든 싫든 앞으로 함께 가야 할 동료니 서로 조심하면 좋겠구나. 알겠지?”

“네!”

에즈라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밝게 말했다.

“에헤헤. 미안해 막내! 사과할게.”

“…미친 사람.”

베스파가 눈을 감고 칼을 집어넣었다.


베스파의 말대로 우리는 그 나날로 인해 미쳤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과대망상을 하며, 잔혹한 일에는 누구보다 무던하다. 나는 죄를 범했고, 벌을 받아야 한다. 나도, 에즈라도. 그리고 이 도시도.


하지만 베스파는 이 영역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은 착한 아이다. 그 속에 정의감이 있다.


어느새 이날 했던 생각이 몇 없는 내 소망이 되었다.


나는 이내 생각을 털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안개 속을 걸었다.


그리고 문제의 그 공방이 있다는 구역에 도착했다.


“난장판이군.”

우리 시야에 나타난 건 즐비한 시체들이다. 해결사인지 조직인지 분간이 안 된다. 나는 곰방대를 물었다. 그중 눈에 띄는 저 진청색 코트와 노란색 옷가지. 치안 및 보호 협회 츠바이다. 신원미상의 시체들과 츠바이 협회 해결사들의 시체라. 사건 현장을 좀 더 살펴 봐야겠군. 나는 곰방대를 물었다.

ProjectMoon Official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ProjectMoon
ProjectMoon
구독자 4,670
멤버십 가입

23개의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로운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