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림 탐정

33화 신경증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주위 사람들을 갉아먹고 휘두른다.

 

 신경증. 스트레스의 창. 가학적인 발산. 동시에 자신을 옥죄는 감옥. 상처 입힐수록 자신도 상처를 입는 증상. 신경질적인 뇌의 자극과 짜증은 실체를 부여받아 전기의 형태를 띤다. 그 전류가 몸을 타고 흐를 때 몸은 통제 못 할 분노로 타들어 간다. 하지만 폭발적이지 않다. 그것은 날카롭다. 콕콕 찌르는 것부터 마음에 구멍을 뚫어 놓는 것까지. 신경증은 주위를 타고 흐른다. 주변의 분위기를 바꾼다. 자신의 히스테리를 남에게 끼얹는다. 그러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되려 자신의 마음이 검게 타들어 가고 조급해진다. 남들을 더욱 태우면서. 이 성질을 이해해야 한다. 끝없이 발산하는 짜증과 역정. 과대망상과 피해의식.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주위 사람들을 갉아먹고 휘두른다. 그리고 아주 빠르다.

 500명의 시체가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저것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다. 벼락인간이 주입한 전기자극으로 뇌가 기계적인 움직임을 명령할 뿐이다. 빛의 속도. 벼락인간은 이론상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500명 사이를 표류한다. 고통을 느끼지도 공포를 느끼지도 않는 생체 기계와 같은 것들이다. 뒤틀림의 하위 개체라고 볼 수도 없지. 타버린 시체에서 시체로 넘어갈 찰나를 잡아야 한다. 손쉬운 방법은 푸른 연기를 내뿜는 것이다. 죽음의 연기. 정지의 연기. 하지만 이 방법은 마지막에 쓰도록 해야겠지. 보라색은 보라색으로. 내게는 교과서적인 방법이다. 어디까지 묶어 낼 수 있을까. 내게 부여된 무거운 죄의식. 심장을 옥죄고 내 정신을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보랏빛 기억. 이 기억을 끄집어 내야 한다.


 난 그 날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모제스라는 인간은 우제트의 대장으로서 연기전쟁에 참여했다. 나는 그저 임무를 완수하면 될 뿐이었다. 그 과정에는 해석의 여지도 자비도 없었다. 디아스의 명령을 위해. 그녀의 꿈을 위해. 살아오며 너무나도 많은 피를 손에 묻혀왔다. 동료의 피까지. 내가 떠안은 것은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것이다. 이 곰방대는 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것이다. 나는 곰방대를 물어 연기를 들이마신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그들이 나타난다. 난 그들의 고통과 기억을 들이마셔야 한다. 희미하고 강렬한 기억 속에서 보랏빛 기억을 찾아내야 한다. 검은 가시와 같은 기억. 나를 원망하는 눈빛과 몸부림. 나의 죄의식. 내 죄의식은 신경증으로 나타난다. 나는 소음이 싫다. 말이 많은 사람도 싫다. 그 소리는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와 같아서. 전쟁의 소리와 같아서 마음에 피가 흐른다. 작은 투덜거림과 비아냥. 오가는 화가 돋아난 말들. 내가 툭툭 뱉어 온 말의 가시들. 누군가를 몰아붙이고 누군가의 눈물을 봐야만 했던 날들이 있다. 좀 더 상냥했더라면, 더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부하들을 돌보지 않았다. 오직 디아스만을 바라보았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시시한 것들뿐이었다. 선과 악이 없는 도시에서 그 경계를 만들었다. 디아스가 바라는 것과 아닌 것. 선악을 나누는 기준은 그 뿐. 무엇이 나를 그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부하들의 외침과 절규가 들려온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차라리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 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가 걸어온 피의 길이 적나라하게 보여서, 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나는 왜 마음을 바꾸었을까. 왜 동료들을 위한 이타심이 피어난 것일까. 난 내 머릿속에 있는 그들을 구원하고 싶다. 뒤틀림을 하나씩 해결해갈 때마다 그들의 비명이 하나씩 멎어간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왜 자신을 버렸는지. 어째서 누구보다 비정한 명령을 내려놓고 구하러 왔는지. 왜 자신들을 지옥의 제물로 바쳤는지. 그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아서 뒤틀림을 해결해왔다. 이것은 진통제성 마약과 같아서 멈출 수 없다. 뒤틀림 해결이라는 약의 복용을 멈추는 순간 내 머리는 다시 조여온다. 이것은 봉사활동이나 자선사업이 아니다. 순전히 내 죄의식을 풀기 위한 마약. 그런데도 뻔뻔하게 탐정이라는 말로 돈까지 받아왔다. 내가 거부한 의뢰와 의뢰인들. 이 모든 것은 무겁고 아픈 사슬이 되어 또다시 내 마음을 옥죈다. 이 사슬을 찾아내고 싶었다. 마음을 더욱 조인다. 마음에서 피와 고름이 터져 나올 때까지 조이고 조이면 이 사슬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 내가 가진 이 무거운 죄의식. 내가 죽음으로 내몰았던 2142명의 응어리. 벼락인간이 안고 있는 신경증이 얼마나 빠르고 날카로울지 몰라도 내가 느끼는 깊은 가슴 속 사슬의 무게와 고통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들 전부 신경증을 도려내기 위한 어리광 같은 자기만족임을 마주한다. 모멸감과 자기 혐오감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분노. 이 모든 것을 쥐어짜 낸다.


 나는 보라색 숨을 내쉬었다.


 곰방대는 너무나도 얇고 날카로운 바늘이 되었다. 바늘의 머리에서 실이 내 심장에서 짜내어진 듯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실이 아니다. 사슬이고 족쇄다.


 “30초 남았습니다.”


 에즈라와 베스파가 타버린 시체떼를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내 발 앞에도 이미 온 몸이 조각나고 터진 검은 시체들이 놓여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전기자극 영향이 남아있는지 나를 향해 시체 조각이 기어 온다.


 나는 내 손에 놓인 무겁고 날카로운 바늘을 기어오는 시체의 팔에 꽂았다. 그 순간 내 보랏빛 신경증은 모든 시체들을 타고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일제히 모든 시체가 동작을 멈췄다. 사슬은 시체를 타고 서로 서로 묶었다. 실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에서는 피가 터져 나온다. 가시철조망이 뇌를 조이고 터트리는 감각. 견뎌야 한다. 1초도 지나지 않았지만 삶을 놓아버릴 정도의 육체와 정신의 고통이 몸을 죄여온다.


 위-잉


 강력한 벌의 날개짓 소리.


 허공을 관통하는 노란 작살은 시체 사이에서 움직임을 멈춘 벼락인간의 가슴을 꿰뚫었다.


 “됐습니다. 모제스씨.”


 모든 시체들이 제자리에서 힘 없이 쓰러졌다.


 “탐정님! 괜찮으세요?!!”


 에즈라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밖으로 길게 뻗어 나온 마음의 사슬을 다시 거둬들여야 한다. 나는 기억과 고통을 곱씹으며 조금씩 사슬들을 심장 안으로 집어넣었다. 에즈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어쩔 수 없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외롭고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 실을 가슴에 넣은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툴툴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죽지는 않았군.

 “…뒤틀림 회수는 했니?”

 “네 탐정님! 차안에 넣어뒀어요!”

 “그래. 둘 다 고생 많았구나.”

 “모제스씨.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그게… 전기의 영향 때문인지 차가 퍼졌어요…”

 에즈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한희준에게 연락해서 우제트를 부르면 되겠지. 수리도 해줄 거고.”

 아직 보라빛 바늘과 실의 영향인지 머리가 멍하다. 솔직히 지금 여기가 어디이고 언제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운 채로 곰방대를 집어 들어 연기를 들이마셨다.

 “탐정님… 지금… 밤이에요…”

 “지금 몇시지?”

 “새벽 3시 26분입니다.”

 “…장소는?”

 “뒷골목인 것 같아요…”


 나는 미간을 짚었다. 그리고 연기를 뿜었다.

 

 뒷골목의 밤. 청소부들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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