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림 탐정

32화 벼락인간

저 멀리서 보라빛 사람의 형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이곳에서 낮과 밤에 큰 차이는 없지만 안개속에서 빛무리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니 저녁인 것을 알 수 있다. 목적지 부근에 도착하고 있는 것 같군. 도로에 무언가 널부러져 있는지 유난히 차체가 흔들린다. 시체일 확률이 높겠지. 오면서 한희준이 남겨둔 사건 보고서 중 하나를 찾아서 꺼내 읽었다. 벼락인간. 등급은 도시질병. 안개속에서 뇌전이 요동친다고 한다. 벼락인간이 지나간 곳에는 탄냄새를 풍기며 바싹 말라 타버린 시체들이 남는다. 번개는 전기다. 즉, 히스테리, 신경증에 관한 것이다. 타닥거리며 튀는 스파크 주위에 전기를 전도 시키며 날카롭고 저릿한 상처를 남긴다. 빠르고 아플 것이다.

 “모제스씨, 누군가 붙었습니다.”

 베스파가 말했다. 창밖을 보니 검은 그림자들이 펄럭이며 차 옆을 달리고 있다. 이 차는 결코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탐정님! 칼을 꺼냈어요!”

 에즈라가 외쳤다. 차를 잃으면 앞으로의 임무가 골치아파진다. 디아스가 준 밴이니 그리 쉽게 망가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리들도 어떤 역량을 가졌을지 모르기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

 “베스파. 차에 손상 없이 따돌릴 수 있겠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를 바로 세우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급정지 했다. 검은 무리들은 동시에 차 주위를 둘러쌌다. 이번에도 흑운회 같은 조직인가. 무엇이든간에 에즈라와 베스파가 있는 한 상대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곳에서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에 망설임도 적어졌다.

 “에즈라, 베스파. 차에서 내리도록.”

 흑운회 때와는 다른 상황이다. 지금은 변수가 많은 L사 둥지 내부다. 전투 준비태세를 바로 갖춰야만한다.


 차에서 내리자 탄 냄새가 진동을 했다. 보고서에서 읽은 벼락인간의 흔적인가. 그 뿐아니라 그 속에서 뚜렷하게 시큼한 연초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냄새는… 알만 한 사람들은 아는 냄새다. 베스파는 바로 칼집에서 환도를 빼들었다. 에즈라는 알라스 공방 장갑을 끼고 손을 풀었다. 안개속에서 형체가 드러난다.


 웃는 얼굴들. 저들이 쓰고 있는 것은 하회마을의 탈. 입이 귀까지 걸려있는 강철 가면을 쓴 놈들. 거대한 곰방대를 들고 뻑뻑 강화 마약을 피어댄다. 도시질병 사건을 처리하려다 도시 악몽 조직을 만나다니. 이런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 저 놈들은 도시 동부에서 시작했지만 그 세를 넓혀 지금은 도시 전역에 퍼져있는 조직이다.

 “우리를 먹으려고 왔나?”

 나는 곰방대를 물었다. 기본적으로 대화는 가능한 상대다.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탐정님… 저 수다스러운 놈들이 왜 말을 안 할까요..?”

 에즈라가 정면을 응시한 채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도 의문이다. 말이 많은 놈들인데 조용하군. 숫자는 7명 되어 보인다. 만만치 않은 숫자다. 웃는 얼굴들은 조용히 커다란 곰방대를 물고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뿜는다. 나도 연기를 내뿜었다.

 “…움직임이 달라.”

 기괴하게 움직이는 놈들이지만 지금은 더 이상하다. 마치 목각인형 같이 몸을 삐그덕 댄다. 그리고 놈들의 몸에 흐르는 희미한 전류…

 “옵니다.”

 베스파가 말했다. 안개속에서 연기를 뿜어대며 웃는 얼굴들은 우리에게 달려든다. 곰방대가 하나의 거대한 둔기와 같다. 그리고 지팡이 칼과 같이 곰방대 머리를 잡아 빼면 검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무기다. 에즈라가 돌진해오는 두명에게 맞섰다. 큰 궤적을 그리며 날라오는 곰방대 머리를 주먹으로 받아 쳐냈다. 곰방대가 살짝 찌그러지며 놈의 중심을 흔들었다.

 “아오!!! 탐정님! 주먹 진짜 아파요!”

 앓는 소리를 하며 동시에 다른 주먹을 알라스 공방 장갑으로 가속해 명치에 꽂았다. 상대는 뒤로 강하게 밀리며 벽에 쳐박혔다. 다른 한놈이 에즈라가 내지른 팔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나는 보라색 숨을 내쉬어 칼을 휘두르는 속도를 늦췄다. 그새 에즈라는 네스터 망치를 꺼내들어 칼 든 놈의 이마에 망치를 내리 꽂았다. 댕- 철이 공명하는 소리가 울렸다. 망치가 찌그러지며 터졌다. 하지만 가면은 멀쩡하다. 베스파는 다른 한쪽에서 나머지들을 상대하고 있다. 노란 궤적이 현란하게 허공을 가른다. 그 순간 베스파가 우리를 보더니 허리에 찬 작살을 망설임 없이 던졌다. 위잉- 작살은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며 에즈라 앞의 웃는 얼굴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동시에 웃는 얼굴이 들고 있던 칼이 떨어졌다. 에즈라는 바로 스티그마 공방 검을 꺼내들어 상대를 향해 찔러 넣었다. 가슴팍에 박힌 스티그마 공방 검에서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꿰뚫린 가슴팍을 아랑곳 않고 상대는 에즈라의 아래턱을 무릎으로 올려쳤다. 기괴한 움직임. 웃는 얼굴들은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다. 그리고 몸을 타고흐르는 보라빛 전류로 보았을 때 정황상 벼락인간이 원인일터다.

 에즈라와 베스파는 웃는 얼굴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위를 점하지도 못한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 놈들의 힘과 날렵함을 보았을 때 내가 평소 쓰던 보라채찍은 움직임을 묶기는커녕 채찍이 닿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진한 보라색 숨을 내쉬었다. 곰방대는 굵은 사슬로 변했다.

 “에즈라! 내게 작살을 던져!”

 에즈라가 웃는얼굴 어깨에 꽂힌 작살을 빼냈다. 그 순간 에즈라의 움직임에 틈이 생기고 웃는얼굴들 중 한명이 에즈라의 뺨을 곰방대로 후려 갈겼다. 팡- 에즈라의 머리가 위로 젖혀졌지만 쓰러지지 않고 내게 작살을 던졌다. 작살은 벌의 소리를 내며 내 발밑에 꽂혔다. 나는 작살 끝에 보라색 사슬을 묶었다.

 “베스파!”

 베스파가 기다렸다는 듯이 작살을 불렀다. 그리고 곧바로 보라색 사슬이 달린 작살이 굉음을 내며 웃는 얼굴들 중 한명에게 꽂혔다. 작살이 꽂히자 사슬이 몸을 휘감았다. 배가 닻을 내린 것처럼 움직임이 묶인다. 묶인 몸을 발버둥 칠수록 사슬은 더 조여온다. 그리고 내 뇌도 조여온다. 아파서 미치겠군. 머리와 정신이 흔들린다. 하지만 의식을 놓으면 사슬도 사라진다. 무뎌진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에즈라가 로우킥을 후렸다. 다리가 부러지고 상대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에즈라는 다른 다리로 신비를 발현해서 머리를 향해 정통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가면이 터지며 머리도 터졌다. 베스파는 바로 작살을 불러들이고 다시 다른 한놈에게 꽂았다. 베스파가 시간을 벌며 작살을 꽂고 에즈라가 마무리 한다. 안정적인 호흡으로 웃는 얼굴들을 하나씩 격파한다. 그렇게 마지막 놈은 베스파에 의해 머리가 떨어졌다.

 “휴… 탐정님! 어떻게든 살아남았네요!”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끄덕였다.

 “모제스씨. 이 녀석들 제가 알던 놈들과 달랐습니다.”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더군.”

 나는 떨궈진 웃는얼굴의 머리 중 하나의 앞에 섰다. 그리고 가면을 벗겼다. 가면 안은 이미 바짝 타버린 시체의 머리통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멀리서 빛이 반짝였다.


 콰광-


 시간이 엇박으로 들렸다. 찰나 빛이 우리 앞을 가로 질렀다. 안개가 타들어가며 사라졌다. 반경 10m 가량의 안개가 걷혔다. 그리고 500명은 되어 보이는 타들어간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탐정님..!”

 에즈라가 놀란 이유는 시체를 봐서가 아니다. 타들어간 시체들이 일제히 몸을 꺾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기작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인가.

 도로에 널부러진 시체들과 빌딩안의 시체들. 근방 모든 타들어간 시체들이 탄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향해 달려든다. 우리 앞에 쓰러졌던 웃는얼굴들의 시체도 몸을 요란스럽게 꺾으면서 다시 일어선다.


 “이건 도시질병 수준이 아닌데.”

 나는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


 저 멀리서 보라빛 사람의 형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보라색은 역시 재수 없는 색이군.

 “베스파. 지금 저 벼락인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니?”

 베스파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응시했다.

 “움직이고 있군요.”

 멈춰있지 않다. 벼락인간은 이곳 저곳 움직이며 전류를 흘려보내 시체들을 전기 자극으로 조종하고 있다.

 “아까와 같아. 내가 움직임을 멈추게 하면 넌 베는거야.”

 “그때까지 시간은 얼마나 필요합니까.”

 “10분.”

 베스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묻지. 너에게 필요한 시간은 얼마니.”

 “1초만 주시면 됩니다.”

 듬직하군. 앞에 놓인 웃는 얼굴들은 베스파가 맡는다. 그리고 몰려오는 시체들은 일반 시민들로 보인다. 에즈라 선에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에즈라. 죽기직전까지만 나를 지키렴.”

 “네! 맡겨만 주세요 탐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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