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림 탐정

30화 수다

나중에 뒤틀림 백과사전이라도 하나 내시겠군요.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잘도 칼에 피를 묻혔군.”

 “좋아서 죽인 것이 아닙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었을 뿐입니다.”

 “그게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기준이 되나?”

 “뒤에 참수한 머리들이 놓여 있더군요. 아마 통행세를 내지 못한 사람들일겁니다.”

 “영웅 납셨군. 디아스 말대로 복직하고 싶으면 무조건 내 명령에만 따라야 할 거야. 만약 베스파 너 때문에 임무가 실패한다면, N사로 돌아가기는 커녕 디아스가 평생을 바닥에서 고통스레 살게 하겠지.”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베스파가 눈을 천천히 감으며 답했다. 그 옆의 에즈라는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며 부조장 유리가 건네준 막대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그리고 에즈라의 발밑에는 황급히 다시 주워온 1000만안이 놓여져있다. 피가 좀 묻었지만 저 정도면 문제 없다.

 “탐정님! 이 막대 그래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에즈라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당연히 그 막대를 써서 흑운회 구역을 통과할 수 있겠지. 부조장 유리란 녀석이 누구한테 죽었는지 알 만한 놈도 없고.”

 “그게 아니라요! 이걸로 술 마실 수 있을까요?”

 관심사가 술이었군. 술이 있다면 안주도 있을 테니 에즈라가 흥미있어 할 만하다.

 “하아… 에즈라. 술이든 뭐든 먹고 싶은 것은 이제 다 먹을 수 있어. 디아스가 준 돈이면 없던 요리도 배달해줄 거야.”

 베스파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저 아이도 어지간히 먹는 것을 좋아하는군.

 “에헤헤…”

 “막대는 내게 주렴.”

 “네!”

 막대 앞에는 흑운회라는 단어가 한자로 쓰여져있다. 뒷면에는 부조장 유리의 서명인듯한 글씨가 적혀있군. 나중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모제스 탐정님. 그래서 그 꿈의 세탁소는 제 공방처럼 장소형이라구요?”

 유리아가 내 어깨 위에서 지금까지 아무 일 없던 것 마냥 물었다. L사 둥지와 가까워지며 동시에 부쩍 유리아의 말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신비 유지가 어려운 것일까. 이건 나중에 천천히 물어봐야겠군.

“장소형 뒤틀림이 무엇입니까. 모제스씨.”

 베스파도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그 말을 듣자 에즈라가 한번 지적을 하려 베스파에게 눈을 흘겼고, 베스파도 지지 않은 채 에즈라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불꽃이라도 튀겠군.

 “에즈라. 베스파가 나를 뭐라고 부르든 신경 안 쓰니 일일이 지적하지 마렴.”

 “그치만…! 저희 사무소 후배이면서 막내인데…!”

이번에도 베스파 미간에 핏대가 섰다.

 “어허.”

 “네…”

 에즈라가 수긍했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장소형 뒤틀림은 한 장소가 뒤틀림이 되는 거란다.”

 “그렇지만 뒤틀림은 개인이 발현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이 한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까.”

 “정확해. 대부분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정된 장소라는 개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함정과도 같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소형 뒤틀림과 뒤틀림에 의한 외부 침식을 구분해야 한다는 거야.”

 “뒤틀림이 강할수록 주변 환경까지 변화 시키죠!”

 에즈라가 거들었다.

 “그 말대로 뒤틀림은 넘쳐흐르는 것과 같아서, 통제하지 못 한 강한 뒤틀림은 외부까지 영향을 주지. 가장 최근에 내가 해결했던 잉어 사건이 그랬단다. 거대한 잉어로 뒤틀린 한 아이가 있었어. 잉어는 주변에 우울의 물을 만들고…”

 “우울의 대표적인 뒤틀림은 물이기 때문이죠!”

 에즈라가 끼어들었다.

 “그래. 우울은 물과 같지. 이런 분류에 대해서도 천천히 말할 기회가 있겠고. 어찌됐건 강한 뒤틀림은 숙주가 되어 주변 환경을 침식시키고 하위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어. 간혹 장소형 뒤틀림과 혼돈하기 쉽지.”

“나중에 뒤틀림 백과사전이라도 하나 내시겠군요.”

 베스파가 악의 없는 비아냥을 했다. 웃기는군. 책이라니. 아무 도서관에서라도 받아주면 다행일 테지.

 “맞아요 탐정님! 엄청 유익하고 재밌을 것 같아요.”

  에즈라의 말과 함께 차가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모제스씨. 이제 길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완전히 L사 둥지안으로 들어왔나보군. 안개 속에서 건물과 빌딩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한때 찬란하게 빛을 내던 둥지였겠지만 이제는 안개에 잠겼다. 연기전쟁 때와는 사뭇 다르다. 연기 전쟁의 연기는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면, 이 안개는 바닥에 고인물과 같이 잠긴다. 마치 아까 말했던 우울과 비슷하군. 누군가의 거대한 우울인 것일까. 뭐가 됐건 이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길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디아스가 준 의수다. 전해들은 대로 의수로 꿈의 세탁소 보고서의 바코드를 스캔했다.

 ‘도시전설급 사건. 꿈의 세탁소. 가장 최근 목격 지점으로 안내합니다. 300m 직진 후 우회전.’

 의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홀로그램도 아니고 음성 안내라니. 어쩌면 이 안개 속에서는 목소리가 효과적일지도 모르겠지.

 “베스파 이 목소리를 따라서 가도록 해.”

 베스파는 다시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한희준이라는 자의 말에 따르면 뒤틀림의 생포였습니다. 장소형 뒤틀림은 어떻게 포획합니까.”

 “수축해야지. 아까 말했 듯 뒤틀림이 강할수록 팽창하고 주변을 변화시켜. 반대로 말하자면 뒤틀림을 무력화 할수록 그 영역이 축소하는 거야. 손에 쥘 정도로… 적어도 차에는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약화해야겠지.”

 이 밴은 그래서 보통 차가 아니다. 짐칸 자체가 거대한 차원 가방이다. 디아스가 마련한 것이니 이정도 크기면 어마어마한 것도 집어 넣을 수 있겠지. 하지만 뒤틀림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을 차원 가방에 넣어서는 안 된다. 그런 부분도 신경썼을 거라 믿으며 이 트렁크에 뒤틀림을 실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장소형 뒤틀림에는 직접 들어가야 합니까.”

 “그래.”

 “아까 함정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발을 들이자마자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뒤틀림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가 아니야. 마음의 고통을 알아달라는 발악이지. 네 말대로 살의를 품은 뒤틀림은 우리를 죽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부류는 내가 알아볼 수 있어.”

 “결국 모제스씨 당신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당연하지! 우리는 탐정님만 믿으면 되는 거야 막내!”

 다시 한번 베스파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에즈라도 이쯤되면 즐기고 있는 것 같군. 더 이상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의수에서 흘러나오는 기계 안내음만이 차안에 울릴뿐이다. 유리아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군. 왼쪽 어깨로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 곰인형이 축 늘어져있다. 역시 신비 동기화가 불안정한 것 같다. 곰인형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유리아가 죽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투귀 사무소에서 유리아의 몸을 보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순간 곰인형이 움찔 거렸다.

 “으으… 모제스 탐정님…”

 “역시 지금 신비를 유지하기 힘든가 보구나.”

 “네… L사 둥지에 들어갈수록, 안개가 짙어질수록 의식이 희미해져요.”

 “잠시 쉬고 있으렴. 곰인형은 내가 맡아두마.”

 “감사합니다… 잠시 자고 올게요… 개처럼 일해야만 하는데…”

 곰인형이 말을 흐리며 고개를 힘 없이 숙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앞에 깜빡이는 거대한 초록 네온 간판이 불규칙적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네온으로 인해서 주변 안개마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꿈의 세탁소. 도착했습니다. 모제스씨.”

 “좋아. 다들 준비하도록.”

 에즈라는 차원 가방을. 베스파는 칼과 작살 한자루를 챙기고 차에 내렸다. 나는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세탁소 입구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겉을 찬찬히 훑으며 연기를 내쉬었다. 연기와 안개는 하나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자…뒤틀림을 수거하자꾸나.”

 

 우리는 꿈의 세탁소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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