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림 탐정

29화 통행

베스파가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놀라운 승차감이다. 베스파 말대로 운전실력에 실망할 여지조차 없다. 좋은 차가 좋은 운전자를 만났다.

 우리는 L사 둥지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를 조용히 달리고 있다. 나는 뒷자리에서 한희준이 건네준 봉투를 열었다. L사 둥지와 꿈의 세탁소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다. 위치는 도시 남부 L사 둥지의 뒷골목. 둥지는 지금 안개 속에 뒤덮여 있다고 한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라는 한 날개의 몰락. 그에 따른 둥지의 붕괴는 필연적이지. 곱게 추락하는 날개는 없다. 도시에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고 으스러진다. L사의 경우는 안개다. 이 안개 속에서 다들 방향을 잃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직과 해결사 등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 뒤틀림까지 있다니… 전쟁터 같겠군.

 자잘한 안개 깔린 둥지에 대한 정보는 넘기고, 꿈의 세탁소의 정보를 눈으로 훑었다. 도시질병에서 도시전설로 격하했군. 도시 질병이 된 이유는 해결사 사무소 하나를 전멸 시켜서지만, 그 이후로는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지 않아서 등급을 재조정했다고 쓰여있다.

 “…그래서 해결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베스파가 운전석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묻는다.

 “마침 그 부분을 읽으려고 했단다.”

 “평범한 코인 세탁소. 하지만 그 세탁소를 이용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된다?”

 유리아가 어깨 위에서 끼어들어 보고서를 읽었다.

 “탐정님! 그럼 이번에도 모의고사 때와 같은 장소형 뒤틀림일까요?”

 에즈라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시험을 말하시는 겁니까?”

 베스파는 여전히 앞만 보고 말한다.

 “에즈라. 우리가 뒤틀림 탐정 사무소 일을 하며 분류해낸 것들에 대해서 설명해줘.”

 “넵!”

 에즈라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노트 하나를 꺼냈다. 누가봐도 에즈라의 것임을 알 수 있을, 스티커가 잔뜩 붙은 노란색 노트다. 열심히 뒤적이다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손가락으로 짚었다.

 “흠흠. 유리아 후배와 베스파 막내에게 선배로써 뒤틀림에 대한 강의를 해주지!”

 그 말을 듣자 베스파의 미간에 핏대가 서는 게 보였다. 에즈라가 살짝 눈치를 보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제스 탐정님과 유능한 조수 에즈라가 뒤틀림 탐정 일을 해오면서 정리한 고급 정보야! 우선 다들 알다시피 여기 계신 모제스 선생님에게는 뒤틀림이 보여. 뒤틀림은 하나 협회에서 부여한 현상의 이름이야. 협회에 등록한 바로는…”

 “사람의 외형이 갑자기 괴물 같이 변하는 현상이죠.”

 “…저도 9구의 피아니스트 사건과 관련해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응 맞아!”

 어느새 차안이 강의실 같은 분위기로 변했군.

 “하지만 우리 모제스 탐정님께서는 뒤틀림을 단순히 괴물로 변하는 현상으로 생각하시지 않지! 뒤틀림은 사람의 마음이 밖으로 터져나온 것으로 보고 있어.”

 “그리고 탐정님은 뒤틀림이 발현하기 전의 모습도 볼 수 있으시구요.”

 “응. 그래서 우리 사무소는 뒤틀림이 완전히 진행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완전히 진행했다는 것은 모제스씨가 판단하시는 겁니까.”

 “탐정님이라 불러야지 베스파 후배!”

 베스파의 미간에 핏대가 또 하나 섰다.

 “…모제스 탐정님이 그 정도를 판단하시는 겁니까…”

 “맞아! 뒤틀림의 진행정도와 유형을 모제스 탐정님께서 정하셨어. 모든 뒤틀림에는 원인이 있어. 그리고 그 원인을 통해 왜 뒤틀렸는지 설명할 수 있게 정리하지. 그 다음 뒤틀림 당사자에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그걸 받아들이면 뒤틀림이 발현하기전에 해결할 수 있는 거야!”

 “이미 발현한 뒤틀림도 해당됩니까?”

 베스파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물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답했다.

 “정도와 유형에 따라 다르지.”

 최근 여러 일을 겪으면서 뒤틀림에 대한 정보들을 다시 한번 갱신했다.

 “에즈라 너도 들으렴.”

 “네! 탐정님!”

 에즈라가 노트를 넘기고 펜을 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뒤틀림의 유형만 정리했지만, 이번에는 진행정도까지 포함해서 뒤틀림을 분류했단다. 잠복기, 초기, 중기, 말기.”

“병의 진행정도처럼 분류하셨네요.”

 유리아가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그 말대로다. 내게 뒤틀림이라는 것은 병이다.

 “잠복기 상태는 대다수의 사람이 지니고 있는 뒤틀림의 모습이야. 여기있는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사람의 뒤틀림이 발현하기 전부터 보이거든. 그 중에서도 가장 초창기 상태를 잠복기라 부르기로 했단다.”

 “제게 보인다는 벌의 날개는 어떤 정도입니까.”

 “베스파 너의 뒤틀림을 난 초기로 보고 있단다. 기준은 내 주관이지만 잠복기의 뒤틀림은 파편적이거든. 뒤틀림 초기는 작지만 구체적인 형상을 띄고 있지. 그리고 초기 징후를 나는 느낄 수 있어. 베스파, 너의 날개짓에 의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 중 하나야. 여기 있는 누구도 이 바람을 느낄 수 없겠지. 내게만 보이고 느껴지니까. 이것이 초기 징후란다.”

 “탐정님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면 확실히 뒤틀림을 찾고 해결하는데 편리하셨겠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하지만 원치 않는 감각과 통증을 나만 느껴야할 때도 있지.”

 덜컹. 차체가 살짝 흔들렸다. 어느새 우리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L사 둥지로 향하는 작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옅은 안개가 창밖에 깔렸다. 시간은 오후 1시. 안개 속에서 햇살이 퍼지고 일렁인다.

 “…설명은 나중에 더 듣는 것으로 하죠.”

 앞에 10~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길을 막고 서있다. 이 지역을 통제하는 해결사 아니면 조직인가? 불필요한 피는 어지간하면 보고 싶지 않다. 베스파는 차를 세웠다. 무리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똑똑. 한 명이 유리창을 두드린다. 베스파가 유리창을 내렸다.

 “가족 나들이라도 가시나?”

 한 여성이 운적석 창문에 팔을 걸치고 무게를 잡으며 물었다. 팔에는 이레즈미가 새겨져있다. 다른 팔로는 담배를 쥐고 있다. 양팔에 새겨진 이레즈미는 필시 강화문신일 터다. 차 앞에서는 카타나를 허리에 걸친 사람들이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용건이 뭐지?”

 베스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눈을 감고 물었다. 에즈라는 차원 가방에 손을 얹은 채로 준비를 하고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조직인 것 같군.

 “이 앞에서 부터는 흑운회 영역이어서 말이지.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좀 내야하거든.”

 흑운회라…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나저나 남부의 조직들은 역시 북부와 다르게 옷 차림이 차분하군.

 “탐정님…?”

 “…에즈라. 주도록 해.”

 돈을 원하는 무뢰한들에게 돈을 준다. 게다가 지금 아무리 불합리한 금액을 제시해도 디아스가 챙겨준 돈 앞에서는 합리적이다.

 “얼마 드리면 되죠?”

 에즈라가 아깝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글쎄… “

 선뜻 돈을 주려는 태도에 당황했는지 조직원이 눈으로 우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200만안.”

 “떼잉…!”

 에즈라가 아까워 죽으려하는군. 허나 돈만 잃는 것이라면 상관 없다. 어느 정도의 전투력인지,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를 조직에게 돈을 지키자고 도박을 할 이유가 없다. 에즈라가 가방에서 현찰 더미를 꺼내어 손으로 셌다.

 “…1000만안.”

 조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돈을 보니 눈 돌아갔군.

 “흑흑… 탐정님…”

 “줘.”

 “네…”

 에즈라가 운전석 창문 밖으로 1000만안을 건넸다. 이 와중에 베스파는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조직은 돈을 올렸을지 언정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 경험은 있는 조직임을 알 수 있다. 풋내기들은 끝없이 돈을 올린다. 경험이 있는 자들은 상대를 가늠하고 적당선에서 마무리한다.

 “좋아 가도록 해. 깜찍이는 이거 받고.”

  에즈라가 검은 플라스틱 막대를 건네받았다.

 “통행증. 흑운회가 관할하는 곳은 다 통과할 수 있을 거야. 나는 흑운회 부조장 유리라고 하거든. 너희 마음에 들었어. 다음에 내 이름이라도 대서 술이라도 먹어.”

 좋게 좋게 해결됐군.

 “가족 나들이 잘들 하시고~”

 부조장 유리가 피우던 담배를 사이드 미러에 지졌다.

 동시에 머리통이 사라졌다.

 “젠장… 베스파!”

 베스파가 주먹을 내질러 부조장의 머리를 날렸다. 베스파는 태연히 차에서 내려 거울에 묻은 담뱃재를 닦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정적이 흘렀다. 곧바로 베스파가 운전석 옆에서 자신의 환도를 집어들어 무리에게 돌진했다. 옅은 안개 속에서 노란 빛이 몇번 번쩍이고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또 다시 정적이 흘렀다.


베스파가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다음에도 굳이 피를 보겠다면 나부터 죽여야 할 거야.”

 나는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 

 “노력해보죠.”

 베스파는 운전대를 잡고 다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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